박정희와 노무현 정치학의 다른점
국제정치외교협회 회장 이안범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는 친일파였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일본 이름이다.
그는 일본 육군사관학교 제57기 수석 졸업생이며 민주 주둔 관동군 사령부 소속 중위 계급장을 달고 빨치산 토벌군이 되어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바쳤다. 일본 패망 직후 다카기 마사오는 박정희로 이름을 복귀했다. 한국군으로 변신한 박정희는 광복군 제4지대 장교가 됐지만 남로당 조직간부란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리고 기적처럼 살아났다.
1940년대엔 일본 육군 다카기 마사오(高木正雄)였던 박정희가 1960년대엔 한국 대통령이 되어 변신을 마감했다. 43세때 쿠데타를 주도해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둘렀으나 그의 부화가 쏜 총에 맞고 죽었다.
5.16 당시의 한국 정부는 돈이 없어 국가 예산의 52%를 미국 원조자금으로 메꾸며 허기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국민소득 76달러. 대통령 박정희는 민족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민주주의를 밀가루 반죽하듯 요리하며 통치 리더십을 카리스마 리더십으로 변용시켜 1965년엔 수출 목표 1억달러를 달성,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100달러에서 1만달러 시대를 창출시킨 박정희 정책 추진 에너지가 현재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동인 아닌가.
불행했던 과거지만 민주화를 요청한 국민적 저항을 짓 밟고 개발독재란 상흔을 남겼고, 체제 비판 세력에게 간첩죄를 씌워 교수대로 보낸 정치 범죄를 자행한 역사적 심판은 훗날 역사의 몫이다.
박근혜는 고독한 처녀
이런 요인 때문에 박정희 독재청지 상황에 스며 들었던 이념 스펙트럼들은 21세기 정치사회적 아젠다가 결코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된다.
정치에서 책임 리더십은 민중과 사회의 역동적 욕구가 무엇인가를 직시할 줄 아는 능력이다.
조국은 지금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왜인가. 대통령이 문제다.
정치적 패러다임 전환기에 발생된 위기를 발전으로 역전시키는 창조 리더십 부족 때문에 국가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만델라를 보라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아프리카를 옥죄던 고통의 과거사를 가볍게 정리하고 민족에겐 평화를 개인에겐 노벨상을 안겨주지 않았나, 이것이 정치다.
역사는 무능 방치 않아
노 대통령은 ‘유신으로 갈 것이냐, 미래로 갈 것이냐’란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노 대통령은 ‘유신 헌법으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마치 세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독백 같지만 웃긴다.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공부지 유신 정권을 위함이 아니었음은 분명한 현실이다.
탄핵의 늪에서 겨우 살아나온 대통령은 박근혜 야당대표를 주적으로 설정해 전투를 시작했다.
‘역사 바로세우기’란 칼 날을 세워들고 앞으로 앞으로다. 만약 박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면? 국민적 지지가 없다면? 정치적 능력과 비전이 없다면? 그래도 싸움을 걸었을까.
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는 박근혜와 유신이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유신헌법을 박근혜가 초안했나? 인권유린, 야당탄압을 박근혜가 지휘했나? 냉전 이데올로기 시대에 총에 맞아 쓰러진 어머니 육여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며 번민의 시대를 살아온 고독했던 처녀 박근혜가 독재정권을 지휘했던가. 아니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박근혜 공격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24년 전 죽어 땅 속에 누워있는 박정희를 정죄(?)한다면 정치보복적 음모로 오인될 수 있다.
지금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노 대통령이 박정희보다 잘 했거나 또는 잘 할 수 있는 기능의 정치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치학엔 ‘하면 된다’ ‘잘살아보세’란 로드맵이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치학엔 ‘남북관계만 잘되면 다른 것은 깽판쳐도 좋다’와 ‘우리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투정만 있고 로드맵이 없기 대문에 국민과 밖에서 조국을 바라보는 해외동포들 가슴엔 걱정의 멍이 들어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역사는 능력없고 대통령 리더십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도록 방치하지 않는것이 속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