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데올로기 시대가 한반도를 옥죄던 1959년과 1960년의 한국엔 '인간병기'가 존재했었다. 박수천이라는 사람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7회의 북파공작 명령 수행을 위해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처절한 특수 훈련을 받고 인간병기가 되어 조국을 지킨다는 사명으로 자기를 내던졌던 애국 영웅이다.
그러나 정부는 보상이나 훈장 대신 그의 인생에서 그 기간을 지워 버렸다.
박수천씨는 19세에 춘천 첩보부대(HID)에 입소해 강원도의 험준한 산 속에서 인간개조 훈련을 받았다. 높은 산을 평지처럼 달리는 산악훈련 1미터 앞에 있는 적이 모르도록 스쳐 지나가는 위장진출법 사격 납치 가상 훈련 일주일 굶기 등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지옥 훈련을 받았다.
또한 첩보원의 신조인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다' '적지에선 죽지 말라' '극한 상황 외엔 인명을 살상치 말라'는 정신개조 훈련을 통한 제 3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1959년 9월13일 명령 수행을 시작으로 그의 운명은 죽음을 초월한 애국영웅으로 변신되는 파란만장의 연속이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상황에서 4.19 혁명 이후 혼란과 무질서에 빠져든 조국을 보며 절망했고 1960년까지 2년간 7번의 북파공작 임무를 수행한 뒤 군번 계급 훈장도 없이 귀가 조치되어 50년 이상을 병역 기피자(?)란 누명을 쓰고 취직도 할 수 없는 질곡의 현대를 살아왔다.
박수천은 "차라리 동지들처럼 공작 임무 중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이란 통곡 같은 신음을 토해내며 "그래도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란 애국 사상 하나로 지금을 버티어 내고 있다.
만약 오늘이라도 조국이 또 다시 요청한다면 그 임무를 아무 조건없이 수행하겠다는 의지와 애국심을 불태우고 있다.
탈냉전 그리고 냉전이라는 정치구조와 관계없이 첩보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된다. 민간인 신분으로 국가 안보의 틀 속에서 희생 당한 수많은 희생자들을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그들에 대한 국가적 보상은 반드시 정책으로 수립돼야 한다.
그리고 박수천이 진정 애국의 장을 펼쳐 나가도록 새로운 무대를 국가가 마련해 주어야만 한다. 그의 애국심이 역사의 꽃으로 승화되어 도도하게 흐르는 민족의 강에서 창조라는 새 역사를 잉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인간은 도구가 아니라 영광과 이성에 가득 찬 삶을 영위하는 주체자임을 깨달아야 하고 숭고한 인간의 가치는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임을 깨달아야 한다. 애국심은 낙후된 사람에게 문명의 눈을 뜨게 해 준다.
애국심은 피 끓는 조국애의 감정이며 모든 생명체에게 생동감을 일깨워 주는 원동력이 된다. 동시에 인간에게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생명적 에너지이기도 한다.
애국의 이름으로 산화한 수많은 선배들의 희생은 죽음이 아닌 새로운 탄생이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 그들의 애국 의지가 931회의 외침을 받았지만 지금도 도도하게 서 있는 한반도를 일구어 낸 힘의 원천이었음을 감사해야 한다. 그런 마음들이 바다 되어 넘칠 때 그때 미국에 이민 온 한민족 모두의 삶에 새로운 비전이 창출되고 민족 공동체 결성을 향한 에너지가 총체적 힘으로 분출될 것이다. 애국심은 스스로에게 자신을 확인시켜 주는 철학이다.
2005년이 저물어 간다. 박수천의 애국 사상 강연은 감격이며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