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교-국방장관 4人, 판문점 JSA 방문
빗방울은 굵었다. 2m 후방에 그어진 군사분계선(MDL) 너머로는 북한 인민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처음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나란히 선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수장들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3월 말 천안함을 어뢰로 공격해 46명의 무고한 희생을 강요한 북한을 겨냥해 안보위협을 중단하라는 분명한 경고였다. 1976년 8월 북한군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만행 사건이라는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놓인 판문점은 더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기에는 적합한 장소였다.
21일 오전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경기 파주 판문점 JSA를 방문했다. 시작은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어졌다.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클린턴 장관의 비행기 도착이 예정보다 늦어진 탓. 오전 11시 30분 양국 장관들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5m 떨어진 오울렛 초소에 도착했다.
JSA 경비대대 에드워드 테일러 중령의 브리핑을 받은 클린턴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긴장된 표정으로 망원경을 들고 북쪽을 살폈다. 테일러 중령은 “앞쪽으로 2개의 북한군 초소(GP)가 있고 30명의 북한군이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이츠 장관은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한국 대성동에 걸린 태극기를 가리키며 “지금도 양측이 깃발을 더 높이 달려고 애를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 게이츠 장관은 중앙정보국(CIA) 요원 시절 두 차례 판문점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기정동의 깃대 높이는 160m, 대성동 깃대는 100m다.
4명의 장관은 5분간 초소에 머문 뒤 ‘자유의 집’으로 향했다. 도열해 있는 미군과 한국군, 연합군 장병들과 인사를 나눈 장관들은 오전 11시 55분 JSA 내 군정위 건물(T-2)로 들어섰다. 바깥에서는 북한 인민군이 빠른 걸음으로 군정위 건물에 접근해 내부를 살폈다. 군사분계선 위에 놓인 군정위 건물 내부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남북을 오갈 수 있는 곳. 클린턴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회담테이블을 경계로 나뉜 남과 북을 넘나들며 5분간 건물 내에 머물렀다.
건물을 나선 뒤 양국 장관들은 세계에서 몰려든 기자들 앞에 섰다. 게이츠 장관은 성명서를 펼친 뒤 “20년 만에 이곳에 왔는데 북쪽은 정말 거의 변한 것이 없고 고립과 박탈이 지속되고 있다”며 “우리의 군사동맹은 지금보다 더 강한 적이 없으며 어떠한 잠재적 도발자들도 억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석연설에 나선 클린턴 장관도 결연한 목소리로 “여기 전망대에서 남북한 사이 3마일 정도 분리된 국경을 내려다보니, 이것이 얇은 선일지는 몰라도 두 곳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클린턴 장관은 “우리는 계속해서 북한에 ‘다른 길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 길은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유엔사령부는 25∼28일 동해상에서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 계획을 양국 간 군사 핫라인을 통해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이 수신을 거부함에 따라 휴전선 부근의 확성기(bullhorn)를 사용해 훈련계획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