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샤론스키 이론의 외교
국제외교협회 회장 정치학박사 이안범
부적절한 정치언어인 ‘폭정(Tyranny)’이란 단어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6번이나 인용했다. 라이스를 시켜 북한과 6개 국가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낙인 찍었던 부시가 이번엔 “우리는 북한이 핵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아시아 정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면서 ‘설득(Convince)’이란 외교용어를 구사했다.
17분간 연설에서 ‘자유(Freedom)’이란 단어가 34번 나왔지만 그 뉘앙스는 다분히 위협적이었으며 불투명한 앞날을 비춰 주는 듯 했다.
무력과 강압적 힘을 동원시켜서라도 ‘자유를 자유케 하겠다’는 팍스 아메리카나란 패권 정치의 속성은 개발도상국가들에겐 가슴앓이를 강요하는 위협이 되고 있다.
부시는 나탄 샤론스키 이론을 외교정책의 키워드로 삼았다.
소련 반체제 운동가였던 나탄 샤론스키는 유대인이며 이스라엘 정객이다. 그가 쓴 ‘민주주의론’은 부시, 제니, 라이스, 백악관 네오콘들에겐 이미 바이블이 되어 있다.
2002년 샤론스키 이론에 영향을 받았던 부시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의 척박한 땅에 자유의 꽃을 피우자”고 외쳤고, 팔레스타인 민주화를 집요하게 진행시킨 부시 독트린은 미국을 협박하는 어떤 국가라도 선제공격 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라이스 장관도 자유사회와 공포사회의 구분을 ‘마을 광장 시험’이란 개념을 통해서 했다. 민주주의가 왜 양분된 정치사회인가. 다원적 민주주의는 죽었단 말인가.
총 280여 페이지의 이 책은 아랍국가보다 심각한 독재국가가 북한이며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 미사일을 기술까지 판매하여 일본과 다른 나라들까지 위협하고 있단다. 북한이 한국처럼 민주화된 나라면 핵무기 보유가 큰 위협일 수 없다. 그러나 항상 긴장상태를 만들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 전세계를 향한 위협이란 탈북자의 증언을 전하고 있다. 평양의 전체주의 정권이 소유한 핵은 전세계적 위협이기 때문에 북한의 민주화 기대는 헛수고라는 것이다.
샤론스키는 한반도의 지정학과 문화적 정서도 모른다. 왜 한반도가 분단되었고, 누가 분단시켰으며, 동족들이 남과 북에서 어떤 형태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상황을 모르는 샤론스키가 쓴 ‘민주주의론’은 부시와 라이스, 네오콘의 대북관에 무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샤론스키는 김정일이 왜 핵개발에 온 몸을 던졌는가란 질문엔 무지하다.
북의 핵문제를 대화로 풀고 싶다는 부시와 네오콘의 생각속엔 북한이 말을 안 들을 경우 힘으로 치겠다는 숨겨 놓은 발톱이 있다. 결국 명연설로 남기기 위해 21번을 고쳤다는 이번 취임사의 핵심은 ‘자유의 지표’,’자유의 힘’,’자유가 가져오는 평화’ 등 화려한 언어로 넘쳤지만 테러리즘과 미국 말을 안듣는 핵 소유국은 철저한 응징을 당할 것이란 경고였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을 대표하는 MIT의 노암 촘스키는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미국 정책에 거스르는 어떤 국가도 응징한다는 것은 협박이며 자유란 명분을 앞세운 사악한 폭력”이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총체적 지구촌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했던 미국의 대평양 시대는 끝나고 있다.
중국은 100억불 이상의 잠수함 구입과 전력 강화를 시작했고, 최신 함대함 순항 미사일로 무장한 구축함과 프리깃함 구매를 완료했다. 태평양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점령했을 때도 샤론스키의 환상과 이론은 유효할까. 샤론스키가 제시한 전략 이론들은 부시의 입맛에 딱 맞는 조미료일 뿐이다.
외교정책의 키는 ‘변화’가 아닌 ‘지속성’이며 상황의 발전임을 감안한다면 샤론스키의 외교전략은 수정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