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과 부활
국제외교협회 회장 정치학박사 이안범
407년 전, 1598년 12월 16일 침탈 일본군을 바다에서 퇴패시켰단 위대한 민족혼 이순신 제독이 전사했다. 54세였다. 그리고 407년이 지난 오늘, 그는 서서히 부활되고 있다.
<불멸의 이순신>이 TV드라마로 방영중이고 충무공과 임진왜란을 재조명하는 많은 저서들이 발표되면서 영화로 제작키 위한 기획이 진행중이다. 영웅은 혼란과 무질서가 되엉킨 절망시대에 나타난다. 지금 우리는 혼란스런 정치 불안 때문에, 이순신의 부활을 기원하며 참 애국적 지도자를 염원한다.
임진란 당시 이순신 제독이 성취해 낸 빛나는 전과는 단순한 일본침략 찬탈전쟁으로부터 조국을 방어해 낸 승리였다고 평가해선 안 된다. 이 위대한 승리는 민족에겐 희망이며 빛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이며, 비젼이었다. 세계 전쟁역사를 통틀어 분석하고 비교해 보면 이순신처럼 완벽한 혈혈 ‘애국혼’은 찾을 길이 없다.
진정 위대했던 조선의 아들 이순신이 지휘했던 노량대첩은 세계 4대 해전 승리사의 으뜸이 되어, 역사 속의 불빛이 되고 지금도 빛나며 역사가 존재하는 동안 그 빛의 의미는 영원할 것이다.
1900년대 일본의 최고 전쟁영웅 도고 헤이하지로는 “나를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지 말라! 영국 넬슨 제독보다 내가 더 뛰어난 장군이라면 그건 옳다. 그러나 도고가 죽어 다시 태어나도 이순신 장군을 능가할 순 없다. 그는 진정 위대한 지휘관이며 존경스런 인간임에 분명하다. 나와 그 분을 비교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최근 TV 주말 드라마로 방영중인 불멸의 이순신을 사칭하면서 임진왜란의 악질 전범 토요도미 히데요시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바꾸고 있다. 야만과 무지로 일관된 일본 지도자 히데요시가 그 당시 역사의 현장에 없었다면 이순신은 위대할 수 없었다. 히데요시의 야욕과 침략이 없었다면 거북선도, 이 장군의 백의종군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또 선조 25년의 임란, 30년의 정유재란이 없었거나 갈등과 모략으로 점철된 정치권력의 중심부에 불어닥친 불신과 배신이 없었다면, 이순신이 3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명량, 한산도, 노량해전에서 침략군을 섬멸시킬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의 속성은 참으로 예견키 어려운 신비를 되풀이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순신은 정치권력에게 박해와 굴욕을 당했지만 명량대첩을 성공시키면서 죽을 결심으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필사즉생), 살려고 발버둥치면 결국 죽는다(필생즉사)란 생존철학 언어를 창출시켰다.
1597년 10월 25일 울돌목 전투에서 13척의 배로 일본군 함대 133척을 격파시켰던 세계적 전과를 일구어 낸 이순신은 늘 고독했다. 그는 ‘한산도야음’이란 시에서.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라고 절대 고독을 고백하면서 죽음으로 국가를 보위하는 것이 자기 존재의 숙명이며 가치라고 규정지은 삶을 살다 갔고 그리고 지금 부활되고 있다.
아! 이순신, 죽엄을 초월해 온 몸으로 조국을 껴안았던 그는 한민족의 ‘분신’이다. LA를 중심으로 미국에서 이민생활중인 동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자랑이어야 한다.
어느 타인종들에게도 감격과 열정을 담아 자랑할 수 있는 상징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이순신을 온 몸으로 껴안아야 한다. 껴안은 체감이 뜨거워질 때, 자식들과 이웃들에게, 이순신은 ‘우리 민족혼’이었다고 말하라.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때 그 때 이순신은 부활되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아! 이순신 사랑합니다. 어서옵소서.